위선과 권력의 민낯, "엘르" (불편함, 위페르, 권력&성)
《엘르(Elle, 2016)》는 성폭력을 다루는 영화 중에서도 가장 도발적이고 불편한 작품으로 꼽힌다. 일반적인 피해자 중심 서사와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진 이 영화는, 주체적인 여성 인물과 성폭력 이후의 감정과 태도를 새롭게 접근한다. 폴 버호벤 감독은 전작들에서 보여준 충격적 이미지와 통찰을 그대로 이 작품에도 녹여냈으며, 이자벨 위페르는 그 어떤 배역보다 복잡하고 다면적인 ‘미셸’이라는 인물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관객을 압도한다. 《엘르》는 단순한 범죄 영화도, 여성 영화도 아니다. 이 작품은 인간의 욕망, 사회적 위선, 권력 구조 속 젠더 역할을 거칠고도 날카롭게 파헤치는 심리극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계속해서 불편함을 느끼게 하면서도, 영화가 끝나고 나면 질문을 멈추지 않게 만드는 이 영화는, 21..
2025. 4. 7.
시적 영상미의 극한, "트리 오브 라이프" (감독, 우주와 인간, 시적 영상미)
‘트리 오브 라이프(The Tree of Life)’는 테렌스 멜릭 감독의 대표작으로, 영화라는 매체가 감각적 서사와 철학적 사유를 동시에 담아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작품입니다. 브래드 피트, 제시카 차스테인, 숀 펜 등이 출연했으며, 시간과 공간, 인물의 감정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인간 존재의 근원과 우주의 기원까지 포괄하는 전무후무한 스케일을 자랑합니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이야기 구조를 거부하고, 이미지와 음악, 그리고 몽환적인 내레이션으로 관객에게 시적인 체험을 제공합니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결코 쉽거나 친절한 영화는 아니지만, 보는 이의 인생과 감정을 비추는 거울처럼 작용하며, 우리 모두에게 깊은 내적 울림을 남깁니다. 이번 글에서는 테렌스 멜릭의 미학, 인간과 우주..
2025. 4. 6.
사랑을 묻다, "사랑을 카피하다" (키아로스타미, 예술 영화, 사랑의 본질)
‘사랑을 카피하다’(Certified Copy)는 이란의 거장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유럽에서 연출한 첫 장편 영화로, 남녀의 대화를 통해 예술과 인생, 그리고 사랑의 본질을 깊이 있게 탐색한 작품입니다. 특히 윌리엄 시멜과 줄리엣 비노쉬의 미묘한 연기와 함께, 마치 연극과도 같은 대사 중심의 구성은 관객에게 감정적이고 철학적인 도전을 동시에 안겨줍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데서 멈추지 않고, 우리가 믿는 ‘진짜 사랑’, ‘진짜 관계’라는 개념 자체를 해체합니다. 다시 말해, 사랑을 ‘복제’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것조차 진실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깊은 물음을 던지는 이 영화는, 감성과 이성을 넘나들며 관객의 사고를 자극합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의 연출적 특..
2025. 4. 5.